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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하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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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 칼럼]사대(事大)·사대주의(事大主義)(인천일보-17.11.08)
이름
인천하늘고등학교
등록일
2017-11-09

http://www.incheonilbo.com/?mod=news&act=articleView&idxno=786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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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24일 중국은 제19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를 끝냈습니다. 2020년까지 소강사회(小康社會·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하는 사회)를 이룩하고 2035년까지 선진국으로 진입하고 2050년까지 모든 면에서 세계의 선두에 오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대단한 열기라 하겠습니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25년간 양국은 서로 협력하여 환황해권 경제발전과 평화정착에 크게 이바지해 왔습니다. 최근 양국은 사드 문제로 인해 금한령(禁韓令) 등 관계가 급속히 냉각되고, 경색(梗塞)되었는데 공산당 19차 전국대표대회를 계기로 분위기가 서서히 풀려가고 있다고 모든 정보매체들이 전하고 있습니다.  

퍽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중국에 외국인들이 얼마나 투자했는가? 조사해보니 첫 번째가 홍콩, 두 번째가 싱가포르, 세 번째가 한국, 네 번째가 일본, 다섯 번째가 미국이었습니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화교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므로 어찌 보면 준(準)중국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입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한국은 세계에서 중국에 가장 많이 투자한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거의 일 년에 걸쳐 정치·경제적으로 국내외에서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해야만 했습니다.  

▲평화 가져오는 외교가 돼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큰 손님으로 예방했습니다.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동양에서만큼은 미국이 한국의 제일 가까운 우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일본이 미국에 가장 가까운 나라라는 것을 알 것 같습니다. 역사를 되돌아보아도 대륙세력을 해양세력으로 대처하는 예는 익숙한 일이었습니다. 소설 <초식주의자>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은 <뉴욕타임즈> 칼럼에 "한반도 남쪽에 5000만명이 살고 있고, 그중 70만명의 유치원생이 있다. 우리에겐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전쟁의 잔혹성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전쟁하는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또 하나 있습니다. FTA(Free Trade Agreement) 자유무역협정입니다. FTA를 미국과 맺기 위해 그리고 국민적 합의를 이루기 위해 우리 정부가 온갖 힘을 다했다는 것은 우리 국민 누구나 잘 아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된 취임 일성으로 한국과 어렵게 맺은 자유무역협정을 파기하고 새롭게 개정하자고 제안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것을 환영합니다. 

그러나 '평화(平和)'를 가져오는 대통령이 되길 바랍니다.

미국도, 중국도 우리에게 짧은 기간 동안 큰 교훈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진면목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세상에 자기 나라 이익을 배제하고, 한국을 도와줄 나라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힘 있는 나라를 그만큼 대접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사대(事大)입니다. 그러나 힘 있는 나라의 말이 다 옳다고 여기고 무조건 따라가는 것은 사대주의(事大主義)입니다. 약소국이 살아남기 위해 '사대'는 할 수 있어도 '사대주의'에 빠지는 것은 스스로를 노예화하는 일입니다. 
사대주의는 나라와 국민의 영혼을 병들게 하고 자기 상실의 시작입니다. 

▲독립이란 스스로 제발로 서는 일 
육십 평생을 한결 같이 나라를 위하여 분골쇄신(粉骨碎身)한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1880~1939) 선생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며 옵니다. 신채호 선생은 일제 치하 일본에 붙어 민족혼을 말살하려는 세력에 맞서 피를 토하는 정론으로 뜻 있는 사람들을 일깨우고 올곧은 정신으로 나라를 구하고자 온 몸을 던져 투쟁하다 대만에서 체포되어 다롄(大連) 법원을 거쳐 뤼순형무소에서 순국했습니다.  

선생이 남긴 글은 하도 방대해서 지금까지 후학들의 연구 대상이 되었지만 그 중에서도 <낭객(浪客)의 신년만필(新年漫筆)>은 현재의 우리들에게 커다란 깨달음으로 다가옵니다.

"우리 조선은 ……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고 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는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 아!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 특색이라면 특색이나 노예의 특색이다. 나는 조선의 도덕과 조선의 주의를 위하여 통곡하려 한다."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고 민족혼마저 잠식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만리타국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 민족의 혼과 정신을 되살릴 수 있을까 불철주야 노력하던 단재의 눈에 독립운동을 하겠다는 사람들마저 좌와 우로 분열되어 서로 자신의 주의 주장만 옳다고 싸우고 있는 모습은 통탄을 금치 못할 일이었습니다. 독립이란 스스로 제 발로 서는 일인데, 그마저도 외세의 주의주장에 의존하는 안일한 세력에 가한 일침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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