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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하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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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죽산 조봉암선생 명예회복운동의 중심에 계시는 지용택이사장님 한겨레신문 인터뷰 기사입니다
이름
하늘고등학교
등록일
2017-08-01

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804878.html

↑ 기사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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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은 죽산 조봉암이 ‘평화통일’을 외치다 억울하게 사법살인을 당한 지 58주기가 되는 날이다. 이날 오전 11시 서울 망우리 묘지공원에서 추모제가 열린다. 인천 강화 출신인 죽산은 1956년 진보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2위로 낙선한 뒤 1958년 간첩 등의 혐의로 검거됐다. 간첩 혐의에 대해 1심에선 무죄를 받았지만 2심과 대법원에서 뒤집혀 59년 7월31일 사형이 집행됐다. 대법원은 2011년 1월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인천과 강화에서는 대법원에서 무죄가 나오기 오래전부터 죽산의 명예회복을 위해 그가 태어난 강화도에 추모비와 동상을 세우는 운동이 범시민적으로 추진됐다. 새 정부 출범 뒤 이 운동은 더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25일 죽산의 명예회복 운동 중심에 있는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을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오늘 망우리서 ‘사법살인’ 58주기 추모
탄생 120년 내후년에 동상 세울터
건립 시민 모금에 5천여명 참여

 

 

“농민들, 죽산의 토지개혁으로
6·25 당시 북에 협력 안해
독립유공자로 정당한 대접을”

 

 

지 이사장은 “박남춘 의원 등 인천 지역의 일부 국회의원이 참석할 것 같고 대통령과 국회의장, 이정미 정의당 대표 등은 조화를 보내기로 했다”며 추모제 준비 상황을 설명했다. 송영길 의원이 인천시장으로 있을 땐 인천시가 추모 행사비를 지원해줬는데 시장이 바뀌자마자 시 지원이 끊겨 몇몇 인사들 중심으로 행사비를 지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제 죽산의 동상을 세울 시기가 됐다며 올해 말부터 동상 건립 준비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먼저 조각가나 동상을 세울 장소 등을 결정해야 한다. 그는 “시민 힘으로 (동상 건립을) 해야 진짜 죽산을 사랑하고 죽산 정신을 좋아하는 것을 시민들이 보여주는 것”이라며 동상 건립비 모금운동을 벌여왔다.

 

“처음엔 새얼문화재단 돈으로 세울 생각을 했지. 근데 말이야, 대법원에서 무죄가 났지만 같은 대법원에서 사형도 했잖아. 시민이 무죄라고 해줘야겠다는 뜻에서 모금을 시작했지. 1만원도 좋고 5천원도 좋고 이렇게 시작한 시민 모금이 지금껏 5천명이 넘게 참여해 8억원을 냈어.” 지 이사장은 “기분 좋은 것은 젊은 사람이 찾아와 ‘돈이 없어 30만원밖에 못 가져왔다’며 자기와 부인, 그리고 아들 이름으로 각각 10만원 낸 것으로 해달라는 거야. 또 어떤 분은 손자까지 넣어달라고 할 정도였어. 그래서 동상 뒤의 돈을 낸 사람들 이름을 적는 곳에 ‘가족란’을 별도로 만들려고 한다”고 귀띔했다.

 

지 이사장은 “2001년 죽산이 태어난 강화도에 추모비를 세우는 공식 회의에서 강화도 조씨 문중 대표가 비 건립에 반대해 난리가 난 적이 있어. 물론 그 대표는 회의가 끝난 뒤 울먹이며 ‘왜 반대하겠느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회고했다. 해방 뒤 수도경찰청장을 맡아 좌익탄압에 앞장선 장택상조차 죽산의 사형 집행에 대해 ‘생사람 잡은 거야’라며 공개적으로 글을 썼지만, 죽산의 고향에서조차 죽산을 거론하는 걸 꺼렸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소도시 ‘벨레트리’가 이 도시에서 태어난 로마 초대황제 ‘옥타비아누스’ 서거 2000년이 되는 2014년 기념식을 한 적이 있어. 작은 마을에서 자기 동네에서 태어난 인물의 기념식을 하는 걸 보면서 감동했어. 이게 문화야. 죽산이 태어난 지 120년이 되는 내후년에 맞춰 죽산 동상을 세우고 축제도 할 생각이야.”

 

그는 평화통일을 주창하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도 전쟁 중에 ‘평화통일’이라는 횃불을 들어 자기 몸을 버린 사람이 죽산이라고 표현했다. 죽산이 해방 이후 우익인사인 신익희 등을 만나면서도 몽양 여운형과 가깝게 지냈고 또 김구 선생이 이끈 한독당 사람들이 진보당에 대부분 참여한 것을 보면 죽산은 중도통합노선을 걸었던 사람이라고 지 이사장은 말했다.

 

죽산의 둘째 업적으로는 토지개혁 설계를 들었다. 지 이사장은 조 스터드웰이 쓴 책 <아시아의 힘>을 읽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스터드웰은 러시아가 토지개혁을 안 해 혁명을 당했다고 해. 일본도 맥아더가 토지개혁을 했어. ‘만약 한국이 토지개혁을 안 했다면 6·25 전쟁 때 어떻게 됐을까’라는 질문을 스터드웰은 던지지. 죽산의 토지개혁으로 농민들이 자기 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군이 남한에 내려왔을 때 농민의 협력을 얻지 못했어.”

 

그는 “윤길중 선생에게 ‘보수정당을 하실 분인데 어떻게 죽산 선생 밑에서 진보정당(간사장과 선거사무장)을 하셨어요’라고 물었더니 ‘인간적이고 따뜻한 분이야. 그래서 떠날 수가 없었어. 6·25 전쟁이 나 다 도망가는데도 죽산(당시 국회부의장)은 끝까지 남아 트럭을 불러 문서를 실어 보내는 것을 보고 놀랐다’는 말을 직접 들었다”며 죽산을 인간적이고 원칙적인 사람으로 평했다.

 

“통일을 염원하는 ‘그리운 금강산’을 작사·작곡한 사람들도 인천 사람이고 남북협상 때 평양을 다녀온 김구 선생도 무시무시한 옥살이를 인천에서 두 번이나 했어. 또 인천은 한반도 한가운데 있는 통일을 준비하는 도시잖아. 그러한 정신이 있는 인천이기 때문에 죽산이 평화통일을 들고나온 것은 후배로서 고마운 거고 이런 정신을 (우리가) 이어 가야 해.”

 

지 이사장은 “‘호남사람이니까 계백 장군이 좋고, 경상도 사람이니 김유신 장군이 좋다’고 하면 되겠냐. 죽산이 한때 공산주의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을 하셨고, 해방 이후에는 제헌 의원, 초대 농림부 장관을 한 인물이다. 독립유공자로 정당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 김영환 기자 ywkim@hani.co.kr   출처[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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